
구순을 넘긴 Y 할머니는 창문 너머로 햇볕이 들어오는 조용한 방 침대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밤새 뒤척이고 하루 종일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혼자서는 식사를 할수도 없고 돌보는 이는 지쳐 쓰러져 있고 자식의 얼굴도 볼 수 없으니 눈뜨면 그저 쓸쓸한 방의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는 듯하다.
관절염, 골다공증에 고혈압,당뇨 합병증 그리고 뇌졸중, 치매에 이르기 까지 온갖 질병과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한 약물들은 긴 세월을 버티어온 인생 역경의 산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길이지만 초고령시대의 뒤안길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쓸쓸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관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해야하고 생존 경쟁하느라 가족도 이웃사촌도 멀어져야 했지만 아프면 병원을 전전하면서 힘든 치료를 받는 것 말고는 해본적이 없다.
돌봄의 사각지대와 고독사의 문제를 취약계층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유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심신과 인지기능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주변인과 얼마만큼 공감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지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이며 작은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한다.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돌봄을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두의 불행이 될 수 있다. 국가 사회보장제도가 미칠수 영역도 아니고 상업적인 보험이나 개인적인 효도 봉양으로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동이 불가능하고 인지기능 조차 미약해지는 와상의 말년에서 삶의 존엄성을 지키며 임종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질병상태에 필요한 돌봄의 역할과 관계망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퇴행성 질환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에 의지하는 생활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초고령 시대 만큼 불행한 시대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의 상당부분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대화가 어렵고 신체활동도 미미하다. 본인의 의지를 알수 없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가족들과 돌보는 이는 답답하고 우울하다. 노화를 질병의 과정으로 볼 것인지 자연의 법칙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방문 진료를 다니며 종이학 모빌을 그분들의 천장에 달아드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내원하실 수 있는 분들은 어느정도의 신체 활동도 가능하고 교육도 가능하고 보호자 협조도 가능하지만 거동불편하신 분들의 사정은 매우 달랐다. 모든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고 어디까지가 환자의 노력이 필요하고 어디까지가 돌봄이 필요한지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든 상황이 너무나 많은 듯 했다. 푸른 하늘을 볼수도 시원한 바람을 쏘일 수도 없는 그들의 무료한 일상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걸음마를 하기전의 아기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모빌의 시각 자극을 통해 심신의 발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였다. 종이학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이다. 예쁜 종이만 있으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만들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종이학을 눈길과 손길이 가는 곳에 메다는 것은 노동일수도 있고 놀이가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 처럼 고립과 소외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 10장생으로 알려진 학의 비상이 비록은 날수 없지만 삶의 막바지에 도달한 환자의 대리 만족과 평안을 줄 수 있기 바란다. 종이학을 향한 시선과 미약하지만 작은 숨결과 손동작이 꼼짝할 수 없는 그들의 심신에 파동을 일으키기 바란다. 인지기능이나 시력은 온전하지 못하고 가족의 호응에 따라 효과의 차이는 있지만 와상 환자와 주변인과의 교감의 시발점이 되는 듯하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도 눈을 마주칠 수 있다면 또 다른 감정 전달의 방식이 있다면 그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작은 종이학 모빌이 환자와 가족과 돌봄 종사자와 지역사회의 메신저가 되기 바란다. 황혼기의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과정을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돌봄을 무작정 주고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스스로의 작은 움직임과 거북이 같은 일상은 건강을 위한 필수 조건이며 그만큼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지역의 의료인과 돌봄과 복지종사자와 이웃 주민들이 의리와 사랑으로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중랑구 의사회장 오동호

구순을 넘긴 Y 할머니는 창문 너머로 햇볕이 들어오는 조용한 방 침대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밤새 뒤척이고 하루 종일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혼자서는 식사를 할수도 없고 돌보는 이는 지쳐 쓰러져 있고 자식의 얼굴도 볼 수 없으니 눈뜨면 그저 쓸쓸한 방의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는 듯하다.
관절염, 골다공증에 고혈압,당뇨 합병증 그리고 뇌졸중, 치매에 이르기 까지 온갖 질병과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한 약물들은 긴 세월을 버티어온 인생 역경의 산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길이지만 초고령시대의 뒤안길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쓸쓸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관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해야하고 생존 경쟁하느라 가족도 이웃사촌도 멀어져야 했지만 아프면 병원을 전전하면서 힘든 치료를 받는 것 말고는 해본적이 없다.
돌봄의 사각지대와 고독사의 문제를 취약계층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유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심신과 인지기능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주변인과 얼마만큼 공감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지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이며 작은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한다.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돌봄을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두의 불행이 될 수 있다. 국가 사회보장제도가 미칠수 영역도 아니고 상업적인 보험이나 개인적인 효도 봉양으로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동이 불가능하고 인지기능 조차 미약해지는 와상의 말년에서 삶의 존엄성을 지키며 임종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질병상태에 필요한 돌봄의 역할과 관계망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퇴행성 질환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상황에서 타인에 의지하는 생활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초고령 시대 만큼 불행한 시대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의 상당부분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대화가 어렵고 신체활동도 미미하다. 본인의 의지를 알수 없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가족들과 돌보는 이는 답답하고 우울하다. 노화를 질병의 과정으로 볼 것인지 자연의 법칙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방문 진료를 다니며 종이학 모빌을 그분들의 천장에 달아드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내원하실 수 있는 분들은 어느정도의 신체 활동도 가능하고 교육도 가능하고 보호자 협조도 가능하지만 거동불편하신 분들의 사정은 매우 달랐다. 모든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고 어디까지가 환자의 노력이 필요하고 어디까지가 돌봄이 필요한지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든 상황이 너무나 많은 듯 했다. 푸른 하늘을 볼수도 시원한 바람을 쏘일 수도 없는 그들의 무료한 일상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걸음마를 하기전의 아기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모빌의 시각 자극을 통해 심신의 발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였다. 종이학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이다. 예쁜 종이만 있으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만들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종이학을 눈길과 손길이 가는 곳에 메다는 것은 노동일수도 있고 놀이가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 처럼 고립과 소외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 10장생으로 알려진 학의 비상이 비록은 날수 없지만 삶의 막바지에 도달한 환자의 대리 만족과 평안을 줄 수 있기 바란다. 종이학을 향한 시선과 미약하지만 작은 숨결과 손동작이 꼼짝할 수 없는 그들의 심신에 파동을 일으키기 바란다. 인지기능이나 시력은 온전하지 못하고 가족의 호응에 따라 효과의 차이는 있지만 와상 환자와 주변인과의 교감의 시발점이 되는 듯하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도 눈을 마주칠 수 있다면 또 다른 감정 전달의 방식이 있다면 그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작은 종이학 모빌이 환자와 가족과 돌봄 종사자와 지역사회의 메신저가 되기 바란다. 황혼기의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과정을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돌봄을 무작정 주고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스스로의 작은 움직임과 거북이 같은 일상은 건강을 위한 필수 조건이며 그만큼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지역의 의료인과 돌봄과 복지종사자와 이웃 주민들이 의리와 사랑으로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중랑구 의사회장 오동호